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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역린 스토리전개 2. 영화의 주인공 정조의 이야기 |
영화 역린 스토리전개
영화 역린을 먼저 소개하기 이전에 단어의 뜻을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 역린이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합니다. 이것은 용의 약점을 뜻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이 곧 용의로 비유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역린이라는 뜻은 왕의 약점 또는 노여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영화 역린은 정조가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한 후 1년 뒤 정조가 머무르고 있던 존현각에 암살 자객이 침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즉위한 이후에도 노론세력들에 의해 수많은 암살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국가의 군권을 구선복이 쥐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구선복은 사도세자가 죽을 때 그를 희롱했던 인물로 정조가 복수하리라 다짐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영조의 계비이자 정조의 조모인 정순왕후 또한 정조의 권력을 위협하였습니다. 을수는 어렸을 때부터 살수로 키워졌습니다. 그는 조직에서 독립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우두머리는 을수가 사랑하는 여인을 활용하여 그를 협박합니다. 결국 을수는 자신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암살지시에 따르게 됩니다. 우두머리는 을수에게 왕인 정조를 암살할 것을 명령하고 을수는 명령을 지키러 떠나게 됩니다. 비가 쏟아지던 밤 많은 살수들이 정조가 머무르는 존현각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을수는 정조를 발견하고 그를 살해하기 위해 다가서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갑수의 저지로 인해 암살을 포기하게 됩니다. 갑수는 정조의 최측근이자, 그의 곁을 지키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어린 시절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을수와 함께 키워진 살수였습니다. 정조를 살해하기 위해 궁으로 입궐했지만 정조의 진실되고 참된 모습을 보고 오히려 그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하고 그의 곁에 남습니다.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을수가 존현각으로 들어온 날 갑수도 왕을 지키기 위해 존현각으로 향했고 을수의 칼날이 정조를 향하는 순간 갑수가 막아서게 됩니다. 갑수는 을수에게 왕을 암살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을수는 갑수의 요청을 수락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왕실의 군사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암살은 실패로 끝이 나고 정조는 을수를 키워낸 살수들의 우두머리를 벌하러 떠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정조가 살수들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 역린은 마무리됩니다.
영화의 주인공 정조의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인 조선의 22대 왕 정조는 조선의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선의 수많은 왕 중에서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끈 왕으로는 전기에는 세종대왕, 후기에는 정조대왕으로 현대까지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조에게는 슬프고 가슴 아픈 가족사가 있었습니다. 우선 정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의 할아버지인 영조대왕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영조대왕은 조선 시대 최장수왕으로 83세까지 장수했던 인물입니다. 영조는 정실부인인 정성왕후에게서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조를 이어나가기 위해 여러 명의 부인들을 두었습니다. 후궁으로 정빈이 씨를 맞이하여 드디어 손꼽아 기다렸던 아들 효장세자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효장세자는 세자의 자리에 책봉된 지 3년 만에 요절하여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영조는 두 번째 부인인 영빈이 씨 사이에서 아들 사도세자를 낳게 됩니다. 훗날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 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한 명 낳게 됩니다. 그가 바로 조선후기 태평성대를 이끄는 왕인 정조대왕입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어릴 적 영조의 엄청난 총애를 받고 자랐습니다. 3살 때 한자를 깨우칠 정도로 영특했던 사도세자는 영조의 기대치를 매우 높였습니다. 하지만 성장해 나가면서 공부보다는 무예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아버지인 영조와 멀어지게 됩니다. 사소한 오해들이 쌓여 결국 사도세자는 자신의 아버지인 영조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끌고 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왔습니다. 영조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세자로 책봉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역적 지자 불위군왕(역적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조는 정조를 세자 책봉하기 위해 먼저 죽은 자신의 첫 번째 아들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킵니다. 그 이후 정조는 세자로 책봉되고 세자수업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당시 집권했던 집권세력은 노론이었습니다. 노론은 영조를 즉위시킨 세력으로서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일조한 세력이기도 합니다.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일조한 노론이었기에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즉위는 그들에게 엄청난 위험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노론은 정조의 즉위를 앞장서서 방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에도 정조는 조선의 22대 왕으로 즉위합니다. 즉위하면서 정조는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당당히 밝힙니다. 이 발언은 노론새력과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게 됩니다. 정조는 구선복이라는 인물을 몹시 미워했습니다. 구선복이라는 인물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할 때 옆에서 음식을 먹는 등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정조는 이 일을 마음속에 담고 바로 복수하려 했지만 당시 구선복은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정조는 드디어 구선복을 역적으로 몰아 사형시킵니다. 왕이 된 정조는 군사권과 인사권을 독점하여 왕권을 강화합니다. 정조는 군권의 장악을 위해 경호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합니다. 그 후 정치권을 장악하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젊은 문신들과 소통합니다. 그곳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약용이 있습니다. 정조는 신분의 제약이 있었던 서얼들을 등용하여 정계진출의 기회를 늘렸고, 탕평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키운 정약용을 활용하여 자신의 왕국인 수원화성을 축조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입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꿈이자 이상세계였습니다. 정조는 조선의 미니도시인 화성에서 이상세계의 모델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800년 종기가 생기게 된 정조는 자신이 꿈꿔왔던 수원화성으로 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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